역사와 전통의 방짜유기



유기는 원래 페르시아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하여 6세기경부터 대량 제작되었으며 인도와 중국으로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청동기시대로부터 유기를 사용하였는데 유적지출도 연대를 기준으로 보면 상한 연대가 BC 1300까지 올라간다. 한국청동기는 중국에서 온 게 아니라 시베리아 카라숙 문화에서 전해 졌다고 한다.철기시대 이후 청동기문화가 공존하다 삼국시대부터 다시 발달, 백제의 경우 일본에 제련 및 세공기술을 전해주었으며 무령왕릉(525)의 왕과 왕비 수저가 방짜수저였음이 알려졌다.

고려시대는 구리 90~97%, 주석3~10%를 섞은 고려 동을 생산하여 중국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고려의 금속공예는 12세기에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며 송나라에 수출되는 품목에는 항상 방짜유기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방짜유기제작 기술이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에는 없었기에 이때 터 방짜유기를 찾는 수요는 계속 늘어 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이나 세종실록지지에 보면 국가에서 유장이라고 칭하는 유기기술자를 중앙과 지방관아에도 배치했다고 전해지며 일본의 대마도는 토산물을 바치며 유기제품을 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근대 말에는 일본의 유기 공출로 인해 각 가정의 모든 유기를 수탈당해 당사 몰래 땅에 유기를 묻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 다시 유기가 활기를 띠었으나 6.25이후 주춤했다가 50년대 다시 전성기를 맞는 하였으나 60년대 한국의 연료가 목탄에서 연탄으로 뀌면서 일산화탄소에 민감한 유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방짜유기의 병원성 대장균 살균 가능 등 다양한 효능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이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으며 악기류, 제기 류, 식기 류 등 일반 생활용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국 전통의 식기인 유기가 well being 바람과 더불어, 대장금, 상도,허준,등 유명사극이 한류바람을 타고 해외에 알려지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