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청유기



납청 유기는 1926년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침향리에서 출생한 이봉주옹이 1948년월남 당시 남한에서 방짜공장을 운영하던 탁창여씨 공자에 입문하여 원대 장으로 일하다 1957년 서울 구로동에 방짜유기 공장 설립. 1961년 서울 강서구 염창동으로 이전, 1978년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으로 이전 확장, 1989년 경기도 안산시 사화공단으로 확장 이전, 2001년 경상북도 문경시에 제2 방짜공장 설립하였다.

1983년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77호로 지정 작품제작을 왔고, 2013년에 중요무형문화재77호 명예보유자로 현재도 작업 작중이며 큰아들 이형근씨가 2015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77호로 인정받아 같이 작업 중이다. 납청유기에는 문경과 안양에 총 50여명의 생산기술자들이 방짜유기 제작 중이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방짜유기를 여러 경로로 수출 중이다.

78”22의 합금기술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터어키와 한국이다. 세계적인 심벌제조회사 질디안 이라는 회사는 400년역사를 갖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17세기 오스만 터키 제국 때 창립된 세계초대 심벌회사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업체중 한곳이다. 이 회사의 당시 CEO 이며 미국 이민 3세대, 창립자 Avedis Zildjian의 13대손, 이던 CEO Mr Amarde Zildjian 이 아들 Robert Zildjian (후에 Canada로 이민 역시 세계적인 심벌회사 Sabian, www.sabian.com, 창업)과 CTO (기술최고담당) 3인이 1981년 당시 안양시 박달동에 허름하게 지었던 우리나라 최고의 방짜유기공장을 방문했다. 한국의 방짜유기 합금배율이 자기네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은 합금비율과 같은데 호기심을 가졌고 더구나 망치로 두둘겨서 징을 만드는데 매력을 느껴 물어 물어 찾아온것이다.

이후 1982년도 한차례 더 방문했으며 부친을 초청 기술을 배우기 위해 2개월간 보스톤 공장에 머물며 우리나라 방짜 단조기술을 배웠다. Zildjian은 합금기술이 뛰어난 회사이다. 합금을 잘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완성품에 기포가 얼마나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방짜유기는 망치로다 두들겨서 기포가 생기는 게 불가능하나 솥,냄비,불고기판, 불을 가열하는 주방기기는 방짜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주물로(주물방짜)만든다.즉 78:22의 합금배율을 갖게 하고 만드는 방법도 동일하나 차이가 있다면 Zildijan은 기포 없이 만들고, 우리기술은 기포 수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나 수율이 좋지 않고 작게 나마 기포가 생긴다. 그대신 Zildjian은 징(영어로 Gong 이라고 부른다)을 만들 때 망치로 두들기는 기술이 아닌 기계로 even하게 찍는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78:22의 합금 비율은 지키지만 우리방짜유가만큼 은은하며 진동이 오래가는 소리는 만들지 못한다.

한국의 방짜유기는 합금 비율을 같게 하여 만드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 있지만 장인이 손으로 정교하게 두들겨 만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기술을 후손에 빛나는 유산으로 물려 주기 위해서는 유럽의 유명 샐러드기나 남비도 사용해야겠으나 더 우수한 품질의 우리기술 방짜로 만든 샐러드기, 솥, 밥그릇, 냄비를 많이 사용하여 우리만의 전통식기를 많이 사용해 주기 바란다.